2005.10.25 507 호 (p 54 ~ 55)     [English translation]
[라이프]

“쉴라(신라) 매력에 푹 빠졌어요”
환경운동가 모저 일행 자전거 여행 … 2주간 경주, 남해, 제주도 돌며 ‘한국 배우기’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 누렇게 펼쳐진 황금벌판은 자전거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10월11일 아침 경주 시내에서 태종무열왕릉으로 향하고 있는 데이비드 모저 일행.

4세기부터 7세기 사이에 한국에는 ‘쉴라’와 ‘박게’ 그리고 ‘코구려’ 이렇게 세 개의 나라가 있었어요. 이 유적지는 ‘쉴라’ 왕의 무덤인데,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어요.”

신 라의 고도, 경주의 천마총 앞에 선 미국인 데이비드 모저(51) 씨는 자신이 준비해온 자료를 보면서 일행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기자가 ‘박게’가 아니라 ‘백제’라고 고쳐주자 그는 여러 차례 ‘백제’ 발음을 반복한 뒤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는 삼국시대, 특히 신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10여분간의 설명이 끝난 뒤 그와 세 명의 일행, 그리고 기자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 첨성대로 향했다. 출발하기 전 모저 씨는 자전거 여행이 처음인 쉴라 비락(54) 씨와 기자의 자전거를 일일이 살폈다. 천마총에서 첨성대로 가는 길은 평탄했다. 다소 오르막이 있었으나 힘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햇살은 무척 따스하고 평화로웠다. 하늘하늘 흔들리는 길가의 코스모스는 자전거 여행객의 마음을 한껏 부풀게 했다.

경주 반월성 옛 궁궐 터에 이르자 눈길을 끄는 행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신라 김씨 십이위(十二位) 대왕 추향대제가 후손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되고 있었던 것. 신라 김씨의 36명 왕 중에서 무덤이 없는 12명의 왕에 대한 제향을 올리는 행사였다. 신라의 전통 의상을 입고 여러 차례 절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고 일행은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기자가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넓은 의미에서 한 가족”이라고 설명하자 한국만의 특별한 씨족문화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때마침 신라 십이위 대왕 추향대제

이 들 한국 자전거 여행 일행을 이끌고 있는 데이비드 모저 씨는 국제자전거재단(Inter-national Bicycle Fund·IBF)의 대표이자 환경운동가다. 미국 시애틀에 본부를 둔 IBF는 무동력 운송수단을 위한 도시설계, 자전거 안전교육, 자전거 여행 기획 등을 하는 시민단체. 그로서는 이번이 두 번째 한국 방문이다. 그는 지난해 10월에도 서울에서 출발해 DMZ(비무장지대)와 강원도를 거쳐 동해안을 따라 내려와 제주도까지 한 달 동안 자전거 여행을 했다. 올해는 10월10일부터 2주간의 일정으로 IBF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한 세 명의 미국인들과 함께 경주, 거창, 진주, 순천, 고흥, 남해를 거쳐 제주도까지 누빌 계획이다.

여행 일정은 ‘한국 전문가’인 데이비드 모저 씨가 직접 짰다. 그는 여행하는 내내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 등에 대해 일행에게 설명했다. 한국인인 기자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김치, 부산, 대구 등을 예로 들며 한국어를 영어로 표기할 때 K와 G, T와 D를 혼동해서 사용한다고 지적했고, 한국인들의 친절함에 놀라움을 표하는 일행에게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을 치르면서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알려줬다. 심지어 한국에서 절을 할 때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한 번, 조상에게는 두 번, 부처에게는 세 번, 왕에게는 네 번 한다고 설명했고, 동학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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